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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김주혁] 다른 배우와 '함께' 빛났던, 따뜻한 배우

동료와 팬들이 보낸 애도의 말과 기사가 쏟아질 때쯤 비로소 현실로 다가왔다. 김주혁이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럽고 황망한 죽음이다. 대중 바로 곁에, 공기처럼 친숙하게 함께 하던 이였기에 더 믿을 수 없었다. 김주혁은 배우의 아들로 태어나 배우로 살며, 20년 간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성실하게 연기했다. 최근엔 예능 프로그램 '1박2일 시즌3'(2013~, KBS2)에 출연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줬고, 사귀는 동료 배우와 결혼을 생각한다고 했다. 드라마 '카이스트'(1999, SBS)에서 그가 연기한 박사과정 명환처럼, 김주혁은 듬직한 형·오빠처럼 대중의 곁에 머물렀다. 97년 영화 '도시비화'(허원 감독)로 데뷔해, 98년 SBS 8기 공채 탤런트에 합격한 그는, 천생 연예인 같았다. 키가 훤칠하고 잘생겼으며, 톱배우 고(故) 김무생의 차남이라는 태생적 조건도 있었다. 우월할 것만 같은 그의 얼굴 한편엔 늘 푸근하고 선량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 따뜻함은 20~30대의 김주혁을 가족·멜로드라마로 이끌었다.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2005, SBS)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2005, 김현석 감독) '싱글즈'(2003, 권칠인 감독) '아내가 결혼했다'(2008, 정윤수 감독) 등등. 그는 마냥 멋지기 보단 좀 지질해 보일만큼 인간적인 로맨틱 가이에 가까웠다. 첫사랑을 잊지 못해 눈물 흘리며 그녀가 준 스테이플러를 마구 찍어 버리던 순정남(광식이 동생 광태)부터 사랑스럽지만 특이해도 너무 특이한 아내에게 휩쓸리던 평범한 남자(아내가 결혼했다), 사랑보다 하늘을 향한 꿈이 더 소중한 연인을 이해하던 청년(청연)까지. 수더분한 동네 오빠 같던 홍반장(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은 또 얼마나 친근해보였던지. 돌이켜 보면 김주혁은 언제나 혼자 빛나기 보단, 상대 배우와 함께 빛나는 길을 택했다. 고(故) 장진영과 합을 맞춘 '청연'(2005, 윤종찬 감독), 손예진과 함께 출연한 '아내가 결혼했다' '비밀은 없다'(2016, 이경미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경원의 꿈을 응원하는 지혁처럼, 김주혁은 상대가 자유롭게 연기하도록 단단한 토대가 돼줬다. 극을 온전히 이끌어가야 했던 드라마 '구암 허준'(2013, MBC)에서는 탄탄한 내공으로 중심을 지키기도 했다. 말하자면 존재감을 대단히 드러내기보단, 은은하게 빛을 잃지 않는 배우라 할까. 어떤 과도함에서 오는 불편함을 느낀 적이 전혀 없을 만큼, 그의 연기는 늘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그런 모습에서 어렴풋이나마 안정적이고 이타적인 성품을 느끼곤 했다. "지는 게 마음이 편한 성격이라 매니저들이 승부욕 좀 기르라고 한다. 그래도 난 동점인 게 마음이 편하더라." 2015년 magazine M과의 인터뷰에서 김주혁은 이렇게 말했다. "요즘 연기하는 게 너무 즐겁다. 의욕이 넘치는 시기다. 쉬면 뭐하나. 헬스장만 가는데(웃음)." 1박 2일' 하차 이후 '좋아해줘'(2016, 박현진 감독) '비밀은 없다' '공조'(2017, 김성훈 감독)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 홍상수 감독) 등 출연작이 줄줄이 이어지던, 즉 그의 연기 행보가 막 달라진 때였다. 특히 '공조'에서 그는 북한군 차기성으로 분해, 폭발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악역을 선보였다. 달리는 차위의 총격신은 김주혁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엿본 대목이었다. 극장을 나오며 "오, 구탱이형('1박 2일'에서 붙여준 별명) 진짜 멋졌어!!"라는 한 관객의 감탄에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은 없다'의 냉정하고 욕심 많은 정치인 종찬 역도 비슷했다. 배우 김주혁과 인간 김주혁에 익숙해진 대중은 그의 변화를 즐겁게 받아들였다. 그는 40대의 중견 배우가 이만큼 달라질 수 있음을, 본래 잘 하는 역할과 아직 해보지 않은 역할 모두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음을, 작품으로 보여줬다.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본래의 템포보다 조금 더 빠르게. 연기의 자장을 넓힐 때조차 과욕은 느껴지지 않았다. 특유의 성실함과 낙천적인 에너지로, 조금 더 자유로워진 듯했다. "세상에 나와 할 일이 다 못하고 가는 사람이라 더욱 마음이 아프다"는 고두심의 말처럼, 김주혁은 보여줄 연기가 너무 많이 남은 배우였다. 수많은 별이 뜨고 지는 영화계에서 반듯한 나무처럼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그는 최근 연기의 참맛을 알았다는 듯 절정의 연기력을 뽐냈다. 삶은 종종 상상할 수도 없는 순간, 당연히 존재할 거라 생각했던 이를 상실케 한다. 마음이 미어지는 상실 앞에 그의 따스한 온기가 담긴 영화들을 꺼내보려 한다. 좋은 배우였고 동료였던 그를 마음 깊이 애도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나현 기자

2017-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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